신속 배송의 공공성 확보와 농수산물 유통 구조 혁신을 중심으로...

쿠팡의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다시 쿠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구조 또한 국가의 정책적 책임과 국민 정서 측면에서 결코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이는 특정 기업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물류·유통 구조가 단일 민간 플랫폼에 과도하게 종속돼 있다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지적이다.
국민이 체감하는 불편은 ‘한 기업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대체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는 시장 구조에 대한 불안이다. 신속 배송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신속 배송을 가능하게 하는 인프라가 특정 기업의 독점적 지배 구조로 고착화됐다는 점이 문제의 본질이다.
쿠팡이 구축한 신속 배송 시스템은 분명 혁신이었다. 그러나 그 혁신이 공공 인프라로 확장되지 못한 채 민간 독점 인프라로 고착되면서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납품업체는 높은 수수료와 판촉비 부담을 떠안고, 노동자는 과도한 물류 압박에 노출되며, 생산자는 가격 결정권을 상실한다. 소비자는 편리함을 얻지만, 그 비용은 산지·노동·중소 판매자에게 전가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특히 농수산물 유통 부문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다. 기후와 작황에 따라 변동성이 큰 1차 산업이 플랫폼 수수료, 광고비, 반품 리스크까지 함께 부담하게 될 경우, 결과는 명확하다. ▲ 산지 가격 하락, ▲ 소비자 가격 상승, ▲ 유통비 비대화라는 비효율만 반복된다. 이는 전형적인 시장 실패이며, 국가 개입의 정책적 정당성이 충분한 영역이다.
그동안 정부는 플랫폼 공정성, 노동 안전, 시장 지배력 문제를 중심으로 규제와 사후 제재를 강화해 왔다. 그러나 규제만으로는 구조적 종속을 해소할 수 없다. 대체 가능한 물류 인프라를 설계하지 않은 채 규제만 강화할 경우, 소비자는 다시 동일한 플랫폼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는 정책의 실효성을 스스로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문제 해결의 방향은 명확하다. 공공이 최소한의 신속 배송 인프라를 설계·보유함으로써 시장에 실질적인 대안을 제공해야 한다. 한국에는 이미 이를 구현할 수 있는 기반 조직이 존재한다. 전국 단위 배송망과 공공 신뢰를 확보한 우체국, 그리고 산지 조직력과 집하·선별 역량을 갖춘 농협이다.
농협과 우체국의 기능을 결합할 경우, 산지 집하–선별–물류 허브–소비지 배송으로 이어지는 공공 유통망의 기본 골격을 구축할 수 있다. 여기에 정부가 추진 중인 스마트 물류센터 구축 지원, 자동화·콜드체인 투자 지원, 물류 표준 계약 제도를 연계하면 기술적으로도 민간 플랫폼과 유사한 수준의 신속 배송 체계 구현이 가능하다.
이는 신규 인프라 구축이 아니라, 기존 공공 인프라의 정책적 재조합이라는 점에서 현실성 또한 높다.
정책 추진은 농수산물 유통부터 단계적으로 시작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모든 상품군을 한 번에 대체할 필요는 없다. 공공성이 높고, 유통비 개선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농수산물부터 적용하는 것이 정책 효율성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구체적으로는 ▲ 농협이 산지 집하 기능을 담당하고, ▲ 국가 지원 스마트 물류 허브에서 선별·포장을 수행하며, ▲ 우체국과 협력해 새벽 배송을 포함한 소비지 배송을 담당하고, ▲ 표준 수수료 공개를 통해 유통비 구조를 투명화하는 방식이다.
이 구조가 정착될 경우 산지 소득 안정, 소비자 가격 인하, 유통 단계 축소, 폐기율 감소라는 정책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국민에게 선택 가능한 대안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 순간부터 특정 민간 플랫폼은 ‘필수재’가 아니라 ‘경쟁자’가 된다. 국가는 규제가 아니라 인프라를 통해 시장의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 국민 정서가 훼손되는 이유는 특정 기업의 존재 때문이 아니라, 그 기업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구조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전기, 수도, 통신, 철도와 마찬가지로 물류 역시 국민 생활을 지탱하는 기반 인프라가 되었다. 기반 인프라는 공공이 최소한의 표준과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 농협과 우체국의 물류 기능 확장은 기업 확장이 아니라, 국가 기능의 회복이다.
쿠팡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쿠팡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쿠팡 없이도 국민이 생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시장은 경쟁을 회복하고, 국민의 자존심 또한 정책을 통해 지켜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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