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 편중된 배 산업 구조 다변화…아삭한 식감·고당도·새콤달콤한 맛으로 소비자 선택 폭 넓힌다
나주·울산 중심 ‘설원’ 전문 생산단지 조성…생산·묘목·유통 연결해 국산 배 일상 소비시장 공략

[한국농어민뉴스] 추석과 설 명절 선물용으로 인식돼 온 국산 배가 ‘일상에서 사 먹는 과일’로 변신을 시도한다. 농촌진흥청이 초록색 껍질과 차별화된 맛을 갖춘 ‘설원’·‘슈퍼골드’·‘그린시스’ 등 녹색배 품종 보급 확대에 나서면서 ‘신고’ 한 품종에 크게 의존해 온 국내 배 산업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특히 최근 소비자들이 크고 값비싼 선물용 과일보다는 평소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적당한 크기와 맛, 편의성을 중시하면서 국산 배도 명절 중심 소비구조에서 벗어나 품종과 소비 방식의 다양화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농촌진흥청(청장 이승돈)은 이러한 소비시장 변화에 대응해 국산 녹색배 생산·유통 기반을 확대하고 ‘명절용 배’에서 ‘일상 과일’로 배 소비시장을 넓혀나갈 계획이다.

국내 배 산업의 가장 큰 특징은 ‘신고’ 품종 편중이다.
농촌진흥청 자료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신고’ 재배면적은 전체 배 재배면적의 85.4%를 차지한다. 앞서 2025년 1월 농진청이 발표한 자료에서도 당시 국내 배 재배면적 9,421ha 가운데 ‘신고’가 84.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나 단일품종 중심의 생산구조가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고’는 크기가 크고 저장성과 상품성이 뛰어나 국내 배 산업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꽃가루가 거의 없어 인공수분이 필요하고, 생산과 출하가 명절 수요에 집중되는 구조적 한계도 안고 있다. 농진청은 ‘신고’ 재배농가의 안정적인 결실을 위해 다른 품종을 수분수로 확보할 것을 지속적으로 권고하고 있다.
배 산업 자체도 재배면적 감소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농작물생산조사 결과를 보면 배 성과수 재배면적은 8,322ha로 전년 8,529ha보다 2.4% 감소했다. 반면 10a당 생산량은 2,373kg으로 전년보다 13.4% 증가했다. 지역별 생산량은 전남이 약 5만9천톤으로 가장 많았고 충남 약 4만9천톤, 전북 약 2만6천톤 순이었다.
특히 전남 나주는 국내 대표적인 배 주산지라는 점에서 새로운 국산 품종 보급의 핵심 거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농촌진흥청이 녹색배를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존 소비자들이 익숙한 황갈색 ‘신고’와 외관부터 뚜렷하게 구분되면서 품종별로 당도와 산미, 식감, 저장성 등이 달라 새로운 소비시장을 만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 품종이 ‘설원’이다.
설원은 9월 상순 수확하는 조생종 녹색배로 평균 과중은 약 600g, 당도는 14브릭스 이상이다. 단맛이 강하면서 과육이 아삭하고, 잘라 놓았을 때 갈변이 비교적 느려 조각 과일이나 컵 과일 등 소포장·간편 과일 시장에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열매의 크기와 품질도 비교적 균일해 선별과 포장, 대량 유통 측면에서 장점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농진청은 설원을 과거부터 유망 국산 배 품종으로 평가해 왔다. 기존 연구에서도 설원은 9월 상순 수확이 가능하고 과즙이 풍부하면서 아삭하고 단맛이 강한 품종으로 소개됐다.
최근에는 단순한 신품종 개발을 넘어 전문 생산단지 구축이 본격화되고 있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은 지난 8월 13일 나주시, 나주배원예농협과 설원 전문 생산단지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나주는 올해 약 3ha 규모의 설원 전문 생산단지 조성을 시작해 2030년까지 30ha로 확대할 계획이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은 고품질 생산기술을 지원하고, 나주배원예농협은 우량 묘목 생산·공급 기반을 구축하며, 나주시는 농가 품질관리와 유통 관련 행정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는 신품종을 개발한 뒤 묘목만 보급하는 기존 방식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묘목→재배→품질관리→유통→소비시장까지 연결하는 체계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울산에서도 설원 생산 기반 확대가 추진되고 있다. 농진청은 울산원예농협 등과 협력해 녹색배를 포함한 국산 배 품종의 소비자 시식·판매와 생산단지 조성을 추진해 왔다.
또 다른 녹색배인 ‘슈퍼골드’는 단맛에 산미를 더해 기존 배와 다른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9월 상순 수확하는 조생종으로 평균 무게는 약 570g, 당도는 13.6브릭스 수준이다. 은은한 산미가 있어 단맛이 주를 이루는 기존 배와 달리 새콤달콤한 맛을 선호하는 소비자를 겨냥할 수 있다.
중도매인을 대상으로 한 시장성 평가에서도 높은 선호도를 보이면서 유통시장에서의 상품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그린시스’는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고 저장성과 재배 안정성이 강점이다.
9월 중순 수확하는 중생종으로 평균 무게 약 460g, 당도 12.3브릭스 수준이며 녹색 껍질과 풍부한 과즙, 아삭한 식감이 특징이다.
품종명도 녹색을 뜻하는 ‘Green’과 오아시스를 뜻하는 ‘Oasis’를 결합해 만들었다.

특히 배 농가에서 문제가 되는 검은별무늬병에 강한 특성을 갖고 있어 안정적인 생산에 유리하고 상온에서 약 30일까지 저장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현재 재배면적은 2025년 자체 집계 기준 설원 10ha, 슈퍼골드 27ha, 그린시스 43ha 수준이다.
세 품종을 합해도 약 80ha로 전체 배 재배면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크지 않다. 결국 녹색배가 틈새품종을 넘어 새로운 소비시장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생산량 확보와 품질 균일화, 안정적인 판로 구축이 관건이다.
농촌진흥청이 지방정부와 농협 등 전문 유통조직을 묶은 생산단지 조성에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 녹색배 보급 확대는 단순히 ‘배 색깔을 바꾸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국산 배의 소비 방식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라는 데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배는 사과나 감귤 등과 비교해 큰 과실이 많고 명절 선물세트 중심의 유통 비중이 높아 평상시 가정에서 한두 개씩 구매해 먹는 일상 소비에는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반면 녹색배 품종은 품종마다 단맛과 산미, 크기, 식감 등이 뚜렷하게 달라 소비자가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특히 설원처럼 갈변이 느린 품종은 학교급식과 단체급식, 컵 과일, 조각 과일, 편의점·온라인 소포장 과일 등으로 소비처를 확대할 여지도 있다.
배 산업이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품종 다변화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지난해 8~9월 이상고온으로 ‘신고’에서 과육 갈변과 햇볕 데임 등 고온장해가 발생했다고 밝힌 바 있다. 기후변화로 개화기 저온과 수확기 고온 등 이상기상이 반복되면서 특정 품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생산구조의 위험성도 커지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국내 배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신고’를 단순히 대체하기보다는 수확시기와 맛, 크기, 저장성, 병해 저항성이 서로 다른 품종을 함께 육성해 생산과 출하시기를 분산하는 전략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현장 농가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나주에서 ‘설원’과 ‘슈퍼골드’를 재배하고 있는 해오름영농조합법인 김지현 대표는 “‘신고’를 오랫동안 재배해 왔지만 소비자에게 다양한 맛의 배를 선보이고 싶어 품종 갱신을 결심했다”며 “녹색배는 품종마다 맛이 뚜렷해 초록색을 낯설어하던 소비자들도 한번 맛본 뒤에는 다시 찾는 경우가 많아 품종을 바꾼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농촌진흥청은 앞으로 생산단지 확대와 함께 품질 표준화와 유통 기반 구축을 병행해 녹색배를 소비자가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윤수현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원예작물부장은 “배 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명절 중심 소비에서 벗어나 소비자가 평소에도 맛있는 국산 배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농촌진흥청은 녹색배 품종 특성에 맞는 생산·유통 기반을 마련해 농가 경쟁력을 높이고 소비자 수요에도 부응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설원·슈퍼골드·그린시스의 성공 여부는 국산 배가 ‘명절 선물용 과일’이라는 오랜 소비 이미지를 넘어 일상 과일 시장에 얼마나 빠르게 안착하느냐에 달려 있다.
‘신고’ 중심의 단일품종 구조를 다변화하면서 소비자에게는 다양한 맛과 크기의 선택권을 제공하고, 농가에는 출하시기 분산과 새로운 판로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녹색배가 침체된 국내 배 소비시장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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