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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창열/수필가. 시조 시인
시가 기준 세계 1위 기업인 미국의 애플사 총수 팀 쿡이 게이라고 커밍아웃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하긴,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모양이다.
우리나라도 연예인 홍석천이 커밍아웃하여 한때 떠들썩했는데, 요즘은 방송에도 자주 나오고 사회 전체적으로 성적 소수자를 용인하는 분위기다. 섹스비디오 파문의 주인공들도 다시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어 우리 사회가 성 문제에 대해 점차 열린 마음을 가지게 된 것 같다.
1990년대 초,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에서 영어 연수를 했는데, 한 여교수의 인솔로 학생들이 다 같이 극장에 가서 막 개봉된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영화 내용은 중국계와 백인 게이 청년 둘이 동거를 하는데, 중국계 청년의 부모가 갑자기 방문하면서 아들의 성적 정체성을 알게 되어 소동이 일어난다는 이야기였다. 그 교수는 다시 동성애에 관한 자료를 나누어주면서 읽어오라고 한 후 수업시간에 토론에 부쳤다.
그 교수 말에 따르면, 동성애자는 남성 간 동성애자인 게이와 여성 간 동성애자인 레즈비언으로 나뉘는데, 동성애만 하는 경우보다는 팝 가수 엘튼 존처럼 동성애와 이성애를 병행하는 양성애자가 더 많다고 했다.
이성애자에 비해 동성애자, 특히 레즈비언들이 시기질투심이 더 심하고 애정의 강도가 더 진하다고도 했다. 실제, 미국에서 1년 체류하는 동안 게이들은 눈에 띈 적이 없는데, 레즈비언들은 몇 번 목격했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여자 둘이 똑같이 노란 옷을 입고, 머리는 빡빡 밀고, 손을 맞잡고서 당당하게 돌아다니는 걸 본 적이 있다. 한번은 미국 국내선 여객기를 탔는데, 기내 화장실에 갔다가 안에 들어있는 사람이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질 않아서 막 노크를 했다. 그제야 문을 여는데, 얼굴이 불그레해진 성인 여자 둘이 나왔다.
다 큰 남자들끼리 한방에서 자게 되면 징그럽고, 나긋나긋한 여자를 보거나 분 냄새를 맡으면 본능적으로 이끌린다. 이성애자에겐 그게 정상이다. 그래서 그녀들 둘이 화장실에서 나올 때까지만 해도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감히 상상을 못 했는데, 볼일 보고 자리로 돌아오다가 그 여자 둘이 나란히 앉아 서로 다리를 걸치고 있는 걸 보고서야 퍼뜩 깨달음(?)이 왔다.
당시 수업시간에 들은 이야기로는, 예전에는 동성애를 정신병으로까지 인식하여 엄하게 처벌하다가 현대에 와서는 소수자 인권차원에서 점차 관용하는 추세라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동성애를 법적으로 처벌하는 나라가 많지만 점차 완화되고 있고, 미국 일부 주에서는 동성 간 결혼을 인정하여 혼인신고는 물론 의료보험과 양자입양이 가능하다고 했다.
미국 독립전쟁 시기에 조지 워싱턴 다음으로 공을 세운 장군이 있었는데, 그 장군이 쓴 책이 2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웨스트포인트(미국 육군사관학교)에서 전략 교과서로 쓰이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는 원래 프러시아 장군으로 프랑스 출신 미소년을 비서 겸 애인으로 두었다가 동성애 사실이 발각되자 미국으로 망명하였다고 한다.
예술가 중에서는 오스카 와일드 · 마르셀 프루스트 · 안데르센 · 랭보 · 테네시 윌리엄스 · 슈베르트 · 헨델 · 차이콥스키 · 앤디 워홀 · 베르사체 등이 동성애자로 유명하다. 미셸 푸코 등 철학자, 귀도 베스테벨레 독일 전 외무장관 ·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 아이슬란드 여성총리 등 정치인, 록 허드슨 등 할리우드 스타도 있다. 동성애자 중에는 변호사, 회계사, 의사, 국회의원 등 자신의 입장을 변호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갖춘 전문직 종사자가 특히 많다는 이야기도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2013년 부부가 받는 혜택을 동성 커플이라고 주지 않는 것은 평등권 위반이라며 위헌 결정을 내린 데 이어, 최근 “동성결혼을 법적으로 금지해달라.”는 버지니아 등 5개 주의 요청을 각하했다. 사실상 동성결혼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거듭 밝힌 것으로,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이 허용된 셈이다.
지금까지 동성애가 합법화된 나라는 영국, 프랑스, 캐나다를 포함해 모두 14개국이며, 반면에 중동과 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와 러시아 등 70여 개국에서는 여전히 불법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등에서는 동성애자들이 종종 사형에 처해진다.
우리나라는 몇해 전 한 게이 커플이 공개적으로 결혼식을 올린 바 있으나, 구청에서 혼인신고서를 접수하지 않아 법적으로는 부부로 인정받지 못한 상태다.
의학적으로, 남성과 여성은 모두 남성호르몬과 여성호르몬을 정도 차이지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내 생각에는, 동성애자는 후천적 환경의 영향도 있겠지만 선천적으로 호르몬 비율이 일반적인 이성애자와 약간 달라서 생긴 현상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우리와 조금 다르다고 그들을 비난할 수 있는가? 세상에는 다른 것이 너무나 많다. 피부색이 다르고, 지역이 다르고, 세대가 다르고, 지능과 재주가 다르다. 그때마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달팽이, 지렁이, 굴, 거머리 등은 자웅동체로서 다른 개체와 교미하여 때로는 씨를 주기도 하고 때로는 씨를 받아 임신하기도 한다. 이들도 비난받아야 하는가? 식물은 은행나무처럼 암수가 따로 있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자웅동주로서 한 그루 안에서 서로 수정하여 세대를 이어간다. 이때는 어느 쪽이 비난받아야 하는가?
성적 욕망은 본능이다. 이성애자도 동성애자도 조물주가 만들었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고 그냥 그렇게 생겨난 것이다. 욕망이 방종으로 흘러 자신의 몸을 해치거나 남에게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그것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건 나쁘게 볼 이유가 없다. 유한한 인생, 우리 모두 조금 다르게 생긴 사람에 대한 비난의 빗장을 푸는 여유를 가졌으면 한다.
* 제2 수필집 『앎이란 무엇인가 2』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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